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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일기]042.이젠 그만 마셔야겠단 결심

이젠 술과 이별하며 살고있구나 싶어져서
밑줄일기
-월요일 아침 출근길을 앞둔 당신에게 드리는 사소한 편지
042.이젠 그만 마셔야겠단 결심
   작년 가을부터 돌아가면서 아픕니다. 역류성 후두염에 이어 이번엔 대상포진이 왔다 갔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젠 진짜 술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싶어집니다. 약을 먹을 땐 당연히 못먹고, 약을 먹지 않을때도 맥주 반 캔만 먹어도 몸에서 뱉어냅니다. 주량이 세진 않아도 술자리와 향긋한 술을 좋아하는 저였지만, 이젠 "그만 마신 사람 된게 맞구나" 싶어졌어요. 그런 마음으로 주말에 써둔 글을 옮겨둡니다. 사진을 첨부한 전문은 제 블로그 포스팅에서 볼 수 있어요. 이번주 밑줄로는 과거 한 차례 금주했던 시기에 썼던 글, 술맛을 섬세하게 다룬 문장, 금주할 결심을 다룬 문장 모두 골고루 가져왔습니다. 술을 정말 좋아하지만 이제 이별해야겠구나 싶은 마음이니까요.
   이제 술과 이별할 결심을 하게 되니 유달리 맛있었던 그 때의 술들이 기억난다. 나는 독주를 마시기 보다는 향긋한 술을 좋아하는 편이다. 카페에서 책 읽으며 홀짝였던 화이트와인의 향긋함, 수제 맥주 IPA의 섬세한 쓴 맛, 향 좋은 위스키와 곁들여 먹는 카라멜 초콜릿, 기획팀 팀원들과 사무실 1층 건물 노상에 앉아 함께 마셨던 포트와인, 아버님과 막걸리 한 잔했을때 며느리와 함께 마시니 뿌듯해하시던 기억, 스페인에서 음식마다 곁들여 마셨던 식전주, 더 거슬러 올라가면 대학 시절 그렇게 자주 들락거렸던 신촌 서른즈음에의 큰 테이블에 둘러앉아 마셨던 김빠진 맥주까지. 물론 절제 없이 무턱대고 마시다 만든 흑역사들도 많지만, 이별할 결심을 하니 좋은 일들만 기억난다.(....) 

   고기와 밀가루를 멀리하면 오래 살 수 있지만 그럴 거면 오래 사는 의미가 없다, 어떤 연예인이 그랬던가. 하지만 아팠다 겨우 살아났다면 이제 그런 이야기는 하지 못할 게다. 앞으로도 많은 술자리에서 그 술을 그리워하면서 제로 콜라나 사이다를 시키겠지. 아니면 소주나 맥주 한 잔 붙잡고 깨작거리듯 홀짝이거나. 다채로운 술이 점점 많아지는 요즘, 영영 술과 이별해야겠다 결심하는 나는 이기기 힘든 싸움을 하고 있을듯 싶다.  

이번주 밑줄
첫 번째 문장

영화 소공녀의 주인공인 미소가 사는 집 대신 위스키와 담배를 택했다면, 나는 내일 산뜻하게 일어나기 위해 맥주와 커피를 포기할 수 있다. 취향이 날카로운 사람에겐 이게 굉장히 힘든 일, 자아를 자르는 고통일 수 있겠지만, 나는 적어도 좁아진 활동 반경의 폭이 아직까진 그렇게 괴롭지 않다. 물론 연말에 맥주 한 캔 못사온 건 아쉬웠다. 솔직히 이게 사는거냐고 한 세번 생각했지만.. 사실 그래도 좋은 취향을 가꾸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건 여전히 좋아한다. 앞서 말한데로 "좋은 것들"을 고르기 위해 그분들의 리뷰에서 많은 도움을 받으니까. 그렇지만 난 이제 건강을 위해 취향에 조금 무던해진 사람이 되었다.

-출처: 심심한 어른이 되어야겠어(발행인 글)

두 번째 문장

술은 나를 좀 더 단순하고 정직하게 만든다. 딴청 피우지 않게, 별것 아닌 척하지 않게, 말이 안 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채로 받아들이고 들이밀 수 있게.


이 취향의 세계에서 지속적 만족을 얻는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지속적 만족이 불가능하다면 그 반작용으로 생길 지속적 결핍감에 대처할 수 있는가. 쉽게 말하자면, 너는 취향의 확장을 감당한 깜냥이 되는가!(...) 그러니 작은 통 속에 살아가는 동료들이여, 지금 당장 감당할 수 없다면 때로는 나의 세계를 좀 줄이는 것도 괜찮다. 축소해도 괜찮다. 세상은 우리에게 세계를 확장하라고 기꺼이 모험에 몸을 던지라고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지만 감당의 몫을 책임져주지 않으니까.

세 번째 문장

일단 한 달 끊어보니 그 이후에 음주 습관이 훨씬 좋아진다. 중독적이라 가까이할수록 멀어지기 힘든 것처럼 느껴지지만 억지로 거리를 둬 보면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술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한 달간의 금주는 술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과정이다.

독자님이 보내준 답장
2024년 1월을 맞이하면서 하루의 시작을 아침 챙겨 먹기로 계획하고 있어요. 하나 둘 핸드폰 사진첩에 아침 기록이 쌓이는 걸 보면서 나를 잘 다독이면서 챙겨가고 있구나 그런 마음이 들어 스스로 좀 뿌듯하기도 하고 그 사진들이 엄청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덕분에 조금 일찍 일어나서 아침식사도 준비하고 책도 좀 읽어보기도 하면서 하루를 살피게 되었어요. 오늘 레터를 보면서 나를 위한 소중한 끼니를 챙기고, 마음에 좋은 한 줄의 글을 읽는 게 역시나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조금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습관을 정착시키는 게 참 쉽지 않은데, 나를 채우는 방식으로 시작하는 아침을 보내신다니 부럽네요. 아침 식사와 책이라니 생각만 해도 충만한 시간일듯 싶습니다. 요즘 저는 부리나케 일어나 아침을 대충 쑤셔넣고 나가는 일이 많은데-마음이 왜이리 급한걸까요-, 저도 기회가 되면 그렇게 시작하는 아침을 보내는 시간을 늘려야겠어요. 안 되면 주말에라도요.
오늘의 밑줄일기는 어땠나요?
-사연 문장이 한 개 더 있는데, 편지가 길어져 분리했습니다. 취준생 님의 사연을 다룬 글은 수요일에 발송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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